책읽기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

새로운 길 2022. 11. 25. 20:14
제목 :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
지은이 : 데일 카네기
옮긴이 : 임정재
펴낸곳 : 함께 읽는 책
2019년 1월 읽음
 
 
2005년 2월에 읽었는데, 아들 책읽기 숙제를 같이 하느라 거의 14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금방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아브라함 링컨(Lincoln Abrham 1809~1865)
지은이 데일 카네기는 런던에서 <모닝 포스트>지에 연재되고 있던 링컨 생애에 대한 글을 읽었다. 그 칼럼은 링컨의 정치적 활동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내용들 이를테면, 그의 슬픔과 거듭되는 실패, 곤궁, 앤 루트리지와 열애, 그리고 메리 토드와의 비극적인 결혼 등 링컨의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카네기는 미국인이면서도 링컨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 링컨의 일생이 흥미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 역시 이 책을 보기전까지는 링컨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노예 해방을 위해서 남북전쟁을 하고 결국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과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 정도만 알고 있었다.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대략적인 링컨의 일생을 알 수 있다.
  • 유년 실정
  • 못 이룬 사랑
  • 불행한 결혼 생활
  • 불운한 정치인 링컨
  • 링컨 대통령 각하
  • 남북 전쟁
  • 암살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켄터키주의 외딴 오두막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낸시 행크스는 그가 9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다가 15살이 되어서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공부의 참맛을 느꼈고 책을 살 돈이 없어서 빌려서 읽었다.
 
그는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퍽이나 싫어했고, 그가 간절히 소망한 것은 대중 앞에서 연설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것이었다
링컨과 아버지 사이는 좋지 않았다. 링컨의 아버지는 아들이 일은 하지 않고 농담과 연설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을 때 까지 지속된 아버지와 아들 간의 반목은 이미 그 무렵 시작되어 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틈이 벌어져 있던 터였다. 비록 늙은 아버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1851년 아버지가 사경을 헤멜 때에도 "아버님을 뵈면 아버지나 나나 즐겁기보다는 고통스러울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찾아뵙지 않았다.
뉴 세일럼에서는 토요일 밤다 러트리지 선술집에서 열리는 '문학 동호회'에서 손수 지은 시를 낭독하고 그날 그날의 주요한 문제들을 토의하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정말 값으로 매길 수 없이 소중한 것이었고 그는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보다 큰 야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링컨은 뉴 세일럼의 선술집 딸인 앤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그녀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가득 넘칠 듯한 행복감에 젖었다. 링컨의 일생에서 이때만큼 황홀하고 만족스런 때는 없었다. 링컨은 죽기 얼마전에 절친한 친구에게 백악관에 있는 것보다 일리노이에서 맨발로 농사지을 때가 더 행복했다는 말을 했다.
1835년 가을 앤은 병에 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링컨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비탄에 빠졌다.
 
메리 토드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메리 토드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할 정도로 야망과 욕심이 많은 여자였다. 결혼 하기 전에 에피소드가 있는데 링컨은 결혼전 우울증이 심해졌고, 결국은 결혼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후 결국 메리토드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메리토드는 거칠어져만 갔고 친구들은 링컨을 안타깝게 여겼다. 사실 링컨에게는 단란한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는 어떤 것이든 큰소리로 읽었다. 큰소리로 읽는 것은 인디애나의 '수다쟁이' 학교에서 길들여진 습관이었다. 그는 소리내어 읽음으로써 시각은 물론 청각에도 각인시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링컨은 변호사 일을 하면서 소송을 의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처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라 많은 수임료를 받지 않았다.

링컨이 그토록 사랑하던 앤과 결혼했다면 분명 행복했으리라, 그러나 대통령은 되지 못했으리라. 링컨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편이었고, 앤은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도록 이끌 사람은 못 되었다.

링컨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미국은 멕시코와 20개월째 전쟁 중이었다.

...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두가지를 성취했다. 멕시코에 속해있던 텍사스가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멕시코에서 분리되었고 미국은 멕시코 정부에게 텍사스에 대한 권리를 모두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나아가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까지 멕시코 영토의 반을 강제로 빼앗았다.

1858년 여름, 이름도 알 수 없는 시골에서 태어난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정치 대결을 벌였다. 사실 링컨은 마흔 아홉이 되도록 온갖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사업에 실패했고,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않았다. 물론 1년에 3천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변호사라는 직업에서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만 소중한 꿈인 정치인으로서는 좌절과 실패만을 맛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더글라스와의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치열한 난타전 끝에 패배하고 말았다.

 

새로 전열을 가다듬은 공화당은 1860년 봄, 시카고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링컨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흥미로운 일은 전당대회가 예정보다 17시간 연기되면서 공화당의 후보가 윌리엄 시워드에서 링컨으로 바뀐것이다. 19년의 참담한 실패 끝에 그는 자기자신도 정신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극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다.

 

1861년 3월 4일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 7개주는 이에 반발하여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는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 국립묘지에서 한 역사적인 연설에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그 연설을 한 그 당시에는 2분간의 짧은 연설 이후 군중들은 놀라고 실망해서 박수조차 보내지 않았다. 링컨 자신도 사람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다고 생각해 비탄에 빠졌다.

 

링컨은 남군이 항복하고 2일이 지난 1865년 4월 14일 저녁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의 총에 맞아 다음 날 아침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