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지은이 : 김훈
펴낸곳 : 문학동네
2016년 읽음
칼의 노래는 2001년에 출간된 것을 2012년에 출판사를 문학동네로 옮겨서 다시 펴내었다.
이 책은 이순신이 의금부에서 풀려난 후, 명량해전을 승리하고 노량에서 숨을 거둘때 까지의 이야기이고, 중간 중간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읽으면서 2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김훈 작가의 뛰어난 표현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이순신이 결국 노량에서 숨을 거둘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들이었다.
김훈 작가의 글솜씨 때문에 이순신의 고뇌와 어렵고 힘든 상황들이 더욱 더 가슴에 다가왔다.
아래 글귀는 첫 페이지 시작하는 부분의 문장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나는 적의 적의敵意의 근거를 알수 없었고 적 또한 내 적의의 떨림과 깊이를 알 수 없었을 것이었다. 서로 알지 못하는 적의가 바다 가득히 팽팽했으나 지금 나에게는 적의만이 있고 함대는 없다."
이외에도 군사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문장(page 203)과 새로 만든 칼에 대한 묘사(page 176) 등 좋은 문장들이 많이 있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끼니들이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군량없는 수영을 밟고 지나갔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영화 "명량"에서 멋있게만 나오는 영웅 이순신이 아닌, 왜적 뿐만 아니라 임금을 포함한 위정자들, 명나라 군사 등 수많은 적들과의 관계에서 고민하는 모습과 군사들의 질병, 굶주림, 어머니와 아들의 죽음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힘들어하는 인간적인 면까지 볼 수 있었고,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였다.
명량전투 이전 도원수부의 육군과 합치라는 임금의 유시에 대한 장계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 즉...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명량 전투이후 임금으로부터 면사첩(免死帖)을 받는 장면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그러하더라도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아들 면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장면
몸 깊은 곳에서 치솟는 울움을 이를 악물어 참았다. 밀려내려갔던 울음은 다시 잇새로 새어나오려 했다.
...
나는 소금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위에 엎드려 나는 겨우 숨죽여 울었다. 적들은 오지 않았다.